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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비로자나삼신괘불도 등 3건 유형문화재 지정 고시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서울시는 ‘비로자나삼신괘불도’, ‘양아록’, ‘육조대사법보단경(언해)’ 등 세 건의 유산을 23일자로 유형문화재로 지정고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이번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흥천사의 비로자나삼신괘불도는 금어(金魚)ㆍ화담 신선(華潭 愼善) 등 17명의 화승이 1832년(순조 32)에 제작한 불화로, 순조와 순조비ㆍ효명세자(1809~1830)의 빈인 빈궁(후에 조대비)ㆍ효명세자의 아들인 세손(후에 헌종) 등의 축원을 위해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와 부마ㆍ순조의 장인 김조순ㆍ순조의 딸인 명온공주ㆍ복온공주ㆍ덕온공주와 부마들 등 종친이 대거 시주에 참여하여 제작한 왕실발원 불화로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비로자나삼신괘불도

이 괘불도는 서울 지역 사찰에서 보관하고 있는 괘불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편이며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불의 비로자나삼신불을 묘사하고, 이 아래 합장한 가섭존자 아난존자, 하단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배치했다. 이와 같은 도상은 아미타괘불도(1892, 봉국사 괘불도) 및 석가모니괘불도(1886, 봉은사 괘불도) 등과 동일한 도상을 공유하면서 상단 부분만 비로자나삼신불로 바꾼 것이다.

흥천사는 태조 6년(1397) 신덕왕후 강씨의 능침사찰로 처음 오늘날 중구 정동에 조성되었다가 정조 때 현재 위치로 옮겨 신흥사로 불리기도 했다. 흥천사에는 이 불화 외에도 상궁들이 조성한 극락전 아미타불회도(1867년)도 전해오고 있어, 흥천사가 선초(鮮初) 이래로 왕실의 원찰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괘불도를 보관하고 있는 목제 괘불함은 제작 시기는 적혀있지 않지만 괘불도와 한 조로 추정된다. 괘불함의 표면에는 함을 만드는 데 참여한 시주자의 명단과 발원내용이 음각되어 있다. 이처럼 괘불화와 함께 괘불함과 복장물 등이 함께 남아있어 함께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양아록은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이 58세 되던 해에 태어난 손자 이수봉(李守封, 1551~1594)이 16세(1566년)가 될 때까지의 양육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놓은 자료이다.

양아록은 모두 31장(본문은 30장)의 필사본으로 시 37제(題) 41수와 산문 4편 외에 여러 기록이 함께 실려 있다. 이중 손자의 성장과정에 해당하는 것이 13제 16수이다. 교육에 관련한 것은 8제, 질병과 사고와 관련한 것은 15제 16수다.
양아록 표지와 글머리

이 책은 당시 사대부가의 아동 교육과 생활풍속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이며, 가정 교육에 대한 자료가 거의 전하지 않는 조선중기의 사적 연구 자료로서 독보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문건은 1528년(중종 24)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주서에 발탁됐고, 이어 승문원박사를 거쳐 정언ㆍ이조좌랑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광조의 문인으로 조카 휘(煇)의 일에 연루되어 삭탈당하고 성주에서 20여 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는데, 생활에서 일어났던 일을 매우 꼼꼼하게 기록한 묵재일기(默齋日記)를 남기고 있어 당시의 사회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는 또한 가장 오래된 한글 비석(1536년 건립)인 노원구 중계동 ‘서울 이윤탁 한글 영비’(보물 제1524호)에 한글묘비문을 쓴 인물이기도 하다. 부친 이윤탁의 묘비에 묘의 훼손을 경계하는 한글 30자를 비석 서쪽면에 2행으로 음각한 것이다.

육조대사법보단경은 한국불교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선수행의 지침서이다. 선종의 요체인 돈오의 수행방법이 바로 이 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상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면에서도 우리나라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은 우리나라에 전래한 덕이본(德異本)으로, 원래 본문의 내용은 오법전의(悟法傳衣) 등 10장(章)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오법전의(悟法傳衣)와 석공덕정토(釋功德淨土) 등 2장(章)만이 실려 있다.

이 판본은 1496년에 한글 활자를 만들어 찍어 낸 인경 목활자본이다. 성종이 승하하자 명복을 빌기 위해 정현대비(貞顯大妃)와 인수대왕대비(仁粹大王大妃)가 1495년(연산군 1) 원각사(圓覺寺)에서 대대적으로 불경을 찍어 낸 이듬해에 한글 활자를 만들어 찍어 낸 것이다. 이 점에서 조선전기 한글 연구의 학술적인 가치도 높다.

1495년 국역본 ‘법화경’ㆍ ‘능엄경’각 50부를 비롯하여 ‘금강경육조해(金剛經六祖解)’ㆍ ‘반야심경(般若心經)’등 대대적인 인쇄 사업을 벌인데 이어 1496년에는 한글 활자를 만들어 국한문본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과 함께 ‘진언권공(眞言勸供)’을 각각 300부 찍어냈는데 이 판본은 그 가운데 전래된 책이다. 이 때의 인경(印經)은 임금이 내탕고(內帑庫:왕의 개인 재물을 넣어두는 곳간)에서 비용을 내어 도와준 것이다.

대비들이 내탕고의 지원을 받아 정성껏 목활자를 만들어 찍어낸 책이기 때문에, 활자체가 바르고 가지런하며 먹의 빛깔도 진하고 선명하여 인쇄가 깨끗하여 보존 상태 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1496년(연산군2)에 임금이 내탕금을 내어주어 대비들에 의해 한글 활자를 만들어 찍어 낸 인경 목활자본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조선왕실의 불교신앙 및 한글연구에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 지정으로 서울시의 지정문화재는 총 513건으로 늘어났다. 이중 유형문화재는 342건이다.

jycaf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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