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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中 패권경쟁에 낀 한반도…100년 역사 속에 ‘길’있다
1차 대전 獨 선제공격 시달렸던 유럽
93년 1차 북핵위기 상황 비교 등
풍부한 사례·다양한 이론적 틀 제시
한·미동맹 통해 중국 위험 관리하되
反中 아닌 진솔한 전략대화 등 제시


1993년 6월16일, 클린턴 대통령과 앨고어 부통령, 페리 국방장관,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이 한 자리에 모였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따른 유엔의 경제제재 준비 착수에 이어 세가지 군사적 대응방식을 놓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 결과, 1994년 봄부터는 전차, 브래들리 장갑차, 48개 발사대와 300개 미사일로 구성된 6개 패트리어트 포대 등이 한반도에 배치됐다.

북한의 보복 우려 때문에 결국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영변 핵시설을 정밀 유도탄으로 파괴하는 정밀타격안도 검토됐다. 당시 북한의 반응은 심각했다. 실제 전군 전투준비태세에 주민에 대한 전시체제 점검이 이뤄졌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한국정부의 동의없는 군사행동은 안된다며 강력 항의했다.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상황에 휩싸인 사건이었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김정섭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교수는 당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타격이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상황에서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에 몰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바로 안보딜레마의 위험성이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시키면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게 되고, 북한은 미국의 공격이 실제로 임박했다고 믿고 군사적 행동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또 이는 역으로 한국과 미국에게 북한이 선제적 군사행동을 할 것이란 신호로 해석돼 한미는 군사대비태세를 더욱 높이고 다시 북한의 두려움을 더 크게 자극하는 악순환의 고리다.

‘북한의 핵 위협’ ‘중국의 부상’ ‘일본의 안보정책의 변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다급하게 흘러가면서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다.

김 교수는 역저 ‘외교상상력’(엠아이디)에서 이런 복잡한 판을 읽는 열쇠로 역사와 이론이란 두개의 도구를 제시한다. 역사적 사실을 복기함으로써 현재에 대한 통찰을 얻고 이론적 틀을 통해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 방향을 설정하는게 가능하다.

책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100년의 역사를 오르내리며 패권국의 변화, 강대국의 몰락과 재부상, 신흥세력의 등장, 냉전과 분단, 통일 등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사례와 분석으로 가득차 있다.

특히 저자는 다양한 이론적 틀을 통해 사태를 균형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그 중 비정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가장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미어샤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론’은 최악의 수를 둘 때 염두에 둘 만하다.

즉 모든 국가는 스스로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힘의 극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국가간 협력도 매우 일시적이며 믿을 만한 게 못된다.

이에 따르면 미ㆍ중관계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중국은 국력이 커질수록 미국 주도의 현존 국제질서를 타파하려 들 것이며 아시아에서 먼저 미국을 축출하고 지역 패권국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은 패권국이 요구하는 룰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국제체제의 변화는 힘의 배분과 관련이 있다. 이는 결국 경제력으로 귀결된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힘을 키운 독일은 기존 질서에 정면 도전했다, 대영제국은 신흥강대국 미국과 전쟁 없이 세계패권의 자리를 물려준 경우. 양차 대전 사이에 파운드화는 달러와 경쟁했지만 결국 주도권을 상실했다. 힘의 배분이 변하고 있는 현 시점에 평화적 변환이 가능한지도 국제사회 관심사다.

북핵을 마주하고 살게 된 현실에서 어떤 핵억제전략을 써야 할지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선제공격에 시달렸던 유럽과 안보딜레마가 작동했던 1993년 1차 북핵 위기 상황을 연결시킨다. 당시 북한은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 먼저 공격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있었고, 위험 수위까지 갔다는 것이다. 

“헤징전략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선택의 문제에 직면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사안별로 합리적인 입장을 정리하여 이를 미중 양국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현안별 지지’로 대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현안별 지지는 양다리 걸치기나 중립 또는 균형과는 다르다.”(’외교적 상상력‘에서)

저자는 이제 기정사실화된 북핵 앞에서 미국의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것이 우리 안보의 핵심과제라고 말한다.

중동질서의 혼란과 재편, 중국의 지정학적ㆍ군사적 전략, 아베정부의 안보정책, 동아시아 지역통합 가능성까지 폭넓고 깊이 있는 분석을 이어간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한국 외교안보의 전략적 선택’이란 대목.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외교안보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느냐에 대한 저자의 숙고라 할 만하다. 저자는 미ㆍ중 패권경쟁과 관련,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으로 ‘헤징전략’을 제시한다.

한·미동맹을 통해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위험을 관리하되 한·중 우호관계도 최대한 발전시켜 나가는 노선이다. 단 한·미동맹이 반(反)중동맹 성격으로 운용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이와 관련, 주한미군의 규모, 구성, 배치, 전략개념 등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에 대해 향후 한미, 한·중 간 진솔한 전략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풍부한 역사적 사례와 다양한 이론적 틀을 통해 국제질서를 바라보는 균형적 시각과 안목을 키울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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