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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신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 어리석은 사랑…연극 ‘렛미인’ 2월 28일까지
연극 ‘렛미인’은 사랑 이야기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는 헌신적인 사랑과, 그 헌신과 희생을 취하는 이기적인 사랑, 그리고 기꺼이 희생을 감당하려는 어리석은 사랑.

억만년이 지나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이 ‘죽일 놈’의 사랑 이야기를 위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 ‘뱀파이어’를 내세웠다.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를 사랑한 하칸은 그녀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그녀에게 피를 가져다 주며 한평생 헌신한다.

그러나 영원히 늙지 않는 뱀파이어 소녀는 늙고 죽어가는 남자 하칸 대신 또 다른 사랑을 택한다. 하칸처럼 자신의 곁에서 헌신할, 아직은 젊고 파릇파릇한 남자. 그 어리석은 사랑의 주인공은 ‘돼지’라고 놀림 받으며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10대 소년 오스카다.

‘렛미인’은 진부한 뱀파이어 이야기면서 동시에 더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그 사랑 이야기를 풀어가는 표현 방식은 대단히 스타일리시하다.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얀 눈밭, 그 위를 물들이는 선연한 핏빛과 푸르스름한 조명은 물론, 현대무용을 접목한 배우들의 몸 연기, ‘무브먼트’는 이 연극이 얼마나 ‘비주얼’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뱀파이어 캐릭터에 맞게 일라이 역을 맡은 배우는 매 순간 무용을 하듯 몸을 쓴다. 특히 정글짐을 타거나 정글짐에서 떨어질 때, 나무를 기어오를 때 민첩한 무브먼트는 와이어를 쓰지 않고도 마치 날아다니는 것 같은 뱀파이어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스카가 칼로 나무를 찌르는 장면에선 솔로가 군무로 확장되며 한 편의 무용극을 연출한다. 여기에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때로 스산한 포스트록 스타일의 음악이 덧입혀져 관객으로 하여금 시리도록 아름다운, 뻔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연극 ‘렛미인’은 오리지널 무대를 그대로 재현한 ‘레플리카(Replica)’ 공연이다. 뮤지컬 ‘원스’를 만든 존 티파니(연출)와 스티븐 호겟(안무)의 합작품으로,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에서 제작, 초연됐다. 원작은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소설로, 2008년 스웨덴에서 영화로 제작, 2010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된 바 있다.

한국 배우들의 연기는 발군이다. 이 작품을 한국에 들여 온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프로듀서가 “신예와 중견배우를 막론하고 연기 뿐 아니라 몸도 잘 쓰는 배우들을 발굴해 스타로 키워나가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라이 역에 캐스팅 된 배우 박소담은 전작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귀신 들린 소녀 역을 맡았었다. ‘충무로 괴물 신인’의 연극 데뷔로 화제를 모은 박소담은 ‘저래도 멘탈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피칠갑을 한 채 잔혹무도한 뱀파이어 소녀를 연기한다.

오스카 역할을 맡은 신예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와 탄력 넘치는 무브먼트도 매력적이지만, 2막 수영장 장면에서는 ‘기예’에 가까운 잠수 연기로 객석의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 장면을 위해 따로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을 정도라고.

처연하고 슬픈 사랑의 주인공인 늙은 하칸의 역에 연극, 영화, 드라마를 넘나드는 관록의 배우 주진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출연 박소담/이은지(일라이), 안승균/오승훈(오스카), 주진모(하칸) 등. 2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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