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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괘릉 무인석상, 서역인이 아니라고?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8세기 후반 신라 38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주 괘릉은 서역인의 모습을 한 무인석상으로 유명하다.

골이 파인 눈자위, 큰 코, 곱슬한 수염, 굵은 팔뚝, 동서 무역을 할 때 서역 상단(商團) 무인들이 차는 주머니, 복장 등 특징 때문에 당시 카페트, 향로 등을 신라와 무역하던 서역인이거나 서역 외교통상 무관의 모습이라는데 학계에 별 이견이 없었다.
괘릉 무인상 [경주시청 제공]

그런데 문화재청이 19일 발간한 ‘조선왕릉 석물조각사’에서 한 논문은 괘릉의 무인석상에 대해 ‘서역의 직접적 영향이 아닌 신장상(神將像) 등 당시 불교조각의 영향’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무인석상은 원성왕(추정)이 죽은 뒤 70여년후인 경문왕때 불교조각을 주로 다루던 석공이 만들었으며, 이보다 앞선 중국에 이와 유사한 모습의 석상이 ‘황제릉’ 주위에 있었음을 들어 이같은 주장을 폈다.

이 논문은 괘릉의 석상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 복장이라고 해석함으로써, 괘릉 무인석상의 주인공을 서역인이 아니고 동양인으로 추정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흥덕왕릉 무인 석상.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을 닮았다 [경주시청 제공]
경주 구정동 방형분의 부조석상

그러나 원성왕 보다 40년가량 뒤에 사망한 흥덕왕의 능에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을 빼닮은 무인석상이 놓여 있는 점, 구정동 방형분에서는 서역인 외모에 페르시아 지역에서 전래된 격구 스틱을 쥔 부조(국립경주박물관 보관)가 발견된 점, 신라 서라벌이 육상실크로드와 해상실크로드 모두의 종착점으로서 중국을 거치지 않더라도 인도 또는 서역인과 직접 교류를 한 점, 신라와 서역 간 활발한 교류와 우호친선 외교의 흔적이 동서양 사서에 기록돼 있는 점 등에 대해, 이 논문이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의견도 들린다. 이 기사에 붙은 사진을 보고 독자들께서도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이번 발간물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의 학술 가치를 조명하고 보존관리를 위해 시대별 왕릉조각 양식을 종합 분석한 결과물이다.

이 학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0년 넘게 축적해 온 자료를 집성한 것으로 석물의 기원, 재료, 제작공정, 시간적 편년에 따른 조각양식 등을 미술사적 관점에서 통시대적으로 파악한 최초의 개론서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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