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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그 호텔 주가보다 비싼, 망고빙수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호세를 만났다. 필리핀인인 호세는 전화영어 사업을 운영하는 국내 한 어학원의 영어강사였다. 한국에 온 지 2년 반. 그는 한국에 와서는 망고를 단 한 번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 먹을 엄두를 못 냈다는 설명이다. 돈이 아깝다고도 덧붙였다. 필리핀에서는 시장에서 개당 300~500원 수준이면 사 먹을 수 있는 망고가 한국에서는 개당 4000~7000원 정도에 팔린다.

호세는 고향 땅인 필리핀에서는 ‘발에 차이는 게 망고’라고 했다. 우리네 마당에 감나무 대신 망고나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호세는 제법 큰 망고나무에 노랗게 익은 망고가 주렁주렁 달리면, 건기가 왔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이상고온으로 이른 더위가 찾아오면서 국내 특급호텔가는 벌써 망고빙수를 내놨다. 눈꽃 얼음 위에 당도 높은 망고를 듬뿍 올린 망고빙수는 한국에서 더는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시그니처 디저트가 아니다. 비싼 가격에도 매년 소비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으면서 망고빙수는 봄과 가을에도 먹을 수 있는 디저트가 됐다. 그런데 그 가격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당장 12만원이 넘는 망고빙수가 등장했다. 포시즌스호텔이 내달 1일부터 9월까지 판매하는 망고빙수다. 국내 특급호텔 빙수 값이 10만원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포시즌스호텔이 판매한 최고가 망고빙수(9만6000원)보다 가격이 31.2% 올랐다. 롯데호텔, 신라호텔, 웨스틴조선호텔도 지난해보다 높은 가격으로 내달 중 빙수 판매를 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신라호텔 망고빙수 가격(8만3000원)은 당시 호텔신라 주식 1주보다도 비쌌다.

한국인의 망고빙수 사랑에 부산 롯데호텔과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등은 망고 애프터눈 티 세트를 출시했다. 이제 망고는 부드러운 생크림 위에 얹어져 망고 코코넛 케이크로도 태어났다는 의미다. 망고 퓌레, 라즈베리 젤리와 바삭한 식감의 코코아 크런치를 첨가한 망고 트로피컬 무스도 새로 나왔다.

사실상 폭등에 가까운 망고빙수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올해 망고빙수 판매량은 전년보다 늘 것이라는 게 호텔업계의 시각이다. ‘스몰 럭셔리’(Small Luxury·작은 사치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 트렌드는 변함이 없고, 특히 망고빙수는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과시형 소비성향이 짙은 상품이라는 점에서 매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와 서울 인터컨티넨탈 코엑스의 지난해 5월 한 달간 빙수 판매량은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망고빙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검색해 봤다. 게시물만 35만5000개를 넘어선다. 특급호텔에서 망고빙수를 즐기는 사람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쩌면 이제 우리는 망고빙수를 사진 찍고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는 맛으로 먹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지. 필리핀과 달리, 한국의 망고빙수에게는 땅이 바짝바짝 마르는 건기가 찾아오지 않을 전망이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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