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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땡땡이 화가’ 김용익의 파격선언…“지금 있는 물감 다 쓰면 내 삶도 끝” [요즘 전시]
국제갤러리 ‘물감 소진 프로젝트’ 소개
무반성적 미화된 디자인에서 탈피 의미
‘물감 소진 프로젝트’ 작업을 하는 김용익 작가 모습. [국제갤러리]

[헤럴드경제(부산)=이정아 기자] “제가 가진 물감이 모두 소진되는 순간, 제 삶도 끝났으면 좋겠어요.”

지난 2018년 12월 31일, 국내 화단에서 일명 ‘땡땡이 화가’로 잘 알려진 김용익(76) 작가는 선언했다. 더는 물감이나 색연필 등을 사지 않기로 한 것. 남은 생에 걸쳐 가지고 있는 재료만 사용해 그림을 그리겠다는 다짐이었다. 그의 작업세계는 변주와 변환, 그 사이 어딘 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물감 소진 프로젝트(Exhausting Project)’ 연작이 소개된다.

다음달 2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과 서울 한옥 공간에서 김용익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가 동시에 진행된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여는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장에는 완벽하고 이상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은 일종의 유토피아주의를 소심하게, 그러나 넌지시 부정하는 듯한 도발적인 작품들이 걸렸다.

김용익 작가. [국제갤러리]
김용익, 물감 소진 프로젝트 23-3-1: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 2023. [국제갤러리]

양극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 계층·계급 갈등, 현대인의 허영과 위선, 더 나아가 대지와 자연의 파괴까지. 작가는 “모두 실패한 모더니즘”이라며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용익의 물감 소진 프로젝트는 무반성적으로 미화된 모던 디자인에서 탈피하는 과정, 그 자체가 됐다.

그는 남아 있는 물감을 골고루 소진하기 위해 화폭과 색의 음영을 잘게 나눈다. 균일해 보이는, 비교적 단순한 규칙으로 재현된 듯 보이는 화면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의미가 달라진다. 그의 붓질이 거칠게 약동하기도, 그러다 이내 절망한 듯 희미해지도 하기 때문이다. 붓질 자체를 하지 않고 일부러 비워둔 공간도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제 작업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일종의 제의적 행위”라고 말했다.

9개의 동그라미가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도 있는데, 이를 가리켜 작가는 “중국의 철학 고서인 ‘주역’에서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주역은 하늘과 땅, 해와 달, 강한 것과 약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등 상대되는 모든 현상을 양과 음,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변화의 원리를 전한다.

김용익, 절망의 미완수 22-1, 2016-2022. [국제갤러리]

그의 화면 속 곳곳에는 ‘절망의 미완수’,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약간의 부정(modest denial of the possibilities of art)’, ‘절망할 수가 없어!’ 글귀도 새겨져 있다.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킬링 타임(Killing Time·시간 때우기)”이라고 툭 내뱉듯 말했지만, ‘현실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그의 끈질긴 고뇌는 그림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눈에 띈다. 특히 그는 1990년대 자기 작품을 검은색과 금색 물감으로 덮은 ‘절망의 완수’라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 그의 최근작이 더욱 대비된다.

작가는 “내 미술이 정말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절망을 느꼈다”며 “그렇지만 예술 안에서 나는 다시 절망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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