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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남아, 中 압박에 앞바다 천연가스도 ‘그림의 떡’
베트남·필리핀, 가스전 개발 ‘지지부진’
中, 10단선 긋고 해양경비대 함정 수시로 출몰
지정학적 위기에 에너지 기업도 외면
지난달 5일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암초를 방어하는 시에라 마드레 호에 물자를 재보급하려는 선박에 중국 해안경비대 2척이 물대포를 쏘고있다. [AF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관련 국가들에게 경제적 문제까지 안기고 있다. 베트남, 필리핀 등은 남중국해 지역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두고도 개발을 할 수 없어 외화를 주고 해외서 수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성장하는 경제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에너지를 오랫동안 수입해 왔지만 국내 공급원 개발이 중국의 방해로 지연되면서 위험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 공식 표준지도에서 남중국해에 10개의 선(10단선)을 그어 남중국해의 약 90%를 중국 영해로 명시했다. 앞서 9개의 선(9단선)을 긋고 그 안의 해역에 대해 ‘역사적 권리’를 주장한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다.

중국이 무리하게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이 해역에 막대한 에너지 자원이 묻혀있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에 인접한 남중국해는 전세계 해상 원유의 약 37%에 해당하는 36억배럴의 원유와 1조1412억입방미터(㎥)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아시아의 각국은 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압박에 자국 앞바다에 매장된 에너지 자원을 뜻대로 개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필리핀과 베트남이 대표적 사례다.

베트남은 2011년 중부 해안에서 약 80㎞ 떨어진 앞바다에서 약 1500억㎥의 천연가스를 발견했다. 하노이 시민이 2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베트남 정부는 엑슨모빌을 중심으로 가스전을 개발하는 ‘블루웨일(Blue Whale)’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난해 말부터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남중국해에서의 에너지 자원 개발은 중국의 영해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중국의 압박으로 해당 프로젝트는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중국은 베트남과 인접한 하이난 섬에 해양경비대 1만2000톤t급 순찰선 CCG 5901을 주둔시키고 수시로 해당 해역을 위협하는 항해를 수시로 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해 12월 29일 입수한 베이징 무역부의 메모에 따르면 프로젝트의 시작 날짜는 여전히 결정되지 못한 상태다. 한때 엑슨모빌이 블루웨일 프로젝트의 지분 64%를 매각하고 철수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필리핀의 상황은 한층 심각하다. 현재 필리핀 본섬인 루손섬에 공급하는 전력의 20% 가량을 생산하는 팔라완 섬의 말람파야 가스전은 2027년이면 상업적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극심한 더위에 전력 사용량이 치솟으면서 필리핀에서 12개 이상의 발전소가 연료 수급 문제로 가동을 멈췄고 루손섬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필리핀 역시 남중국해 연안에서 가스전 개발에 나설 의지를 갖고 있다. 지난다 필리핀 국방부는 군에 남중국해 천연자원을 포함한 필리핀의 영토와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전임 두테르테 정부가 추진했던 중국과의 공동 탐사가 결렬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남중국해의 자원 탐사가 중국의 영토 주권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을 겨냥해 “어느 누구도 역내 세력을 이 문제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스스로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지 못한 동남아 국가들은 결국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블룸버그NEF의 예측에 따르면 필리핀은 2025년 9월까지 액화천연가스(LNG) 구매에 약 14억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며 베트남은 같은 기간 3억 7000만달러를 들여 LNG를 수입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달 초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암초를 방어하는 시에라 마드레 호에 물자를 재보급하려는 선박에 중국 해안경비대 2척이 물대포를 쏜 사건은 이 지역에서의 자원 탐사와 개발이 마주할 지정학적 현실을 보여준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설명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 간 준설과 인공섬 건설을 통해 파라셀 군도와 난사군도에 야 20개의 전초기지를 세웠다. 활주로와 연료 저장소를 갖춘 이들 기지를 기반으로 중국은 이 해역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감시하며 즉각 대응하고 있다.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일본, 필리핀 3국 정상회의에서 3국은 합동 군사 훈련을 강화하기로 합의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필리핀의 항공기, 선박 또는 군대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양국 간 상호방위조약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중국의 압박에 맞섰다.

그러나 미국 등 동맹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군사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이 해역에서의 에너지 개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렉 폴링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남아 프로그램 책임자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전세계 수십개의 다른 유전과 가스전을 두고 중국의 위협을 받는 이 해역을 개발해야 한다고 결정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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